
<이 겨울의 불치병>
박노해
겨우내 많이 앓았지요
내란성 불면증과
내란성 울화병과
내란성 속쓰림과
우린 불치병을 앓고 있지요
사랑이라는 불치병을
공정이라는 불치병을
희망이라는 불치병을
앞서 간 이들도 긴 불치병을 앓았지요
식민지배 36년 내내
전란의 폐허 내내
독재의 억압 내내
그래도 자기 몫의 아픔을 견뎌냈지요
함께 슬퍼하고 노여워하지 않으면
함께 소리치고 떨며 가지 않으면
한 하늘 아래 살아가는 겨레가 아니기에
우리가 딛고 선 인간성의 기본이 무너지고
우리가 피와 눈물로 이룬 토대가 흔들리고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기반이 망가질 때
이 부당함, 이 모욕감,
내 존엄의 치명적인 상처와 울분을
참을 수도 견딜 수도 없지요
저들을 처단하고 뿌리뽑지 않고서는
결코 아물 수도 꽃필 수도 없는
모든 약이 무효하고 모든 치료가 독이 되는
우리 모두는 기꺼이 불치병을 앓고 있지요
사랑이라는 불치병을
공정이라는 불치병을
희망이라는 불치병을
(함께 읽고 싶은 공감이 되는 시)
[의정일보=의정일보] suyu145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