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부터 1년 안에 민생과 복지를 위한 ‘큰 승부’를 봐야 한다》
지난 9월 29일 앤디 버넘(Andy Burnham) 영국 신임 총리는 리버풀에서 열린 노동당 전당대회 첫 대표 연설에서, 마거릿 대처 정부가 1980년대부터 시작한 신자유주의를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선언 자체보다 그 뒤를 받친 구체적인 정책이다. 먼저 버넘 총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로 공공임대주택을 짓고, 활용되지 않는 유휴 공공 부지에 집을 지을 권한을 지방정부에 부여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공공이 지은 집을 다시 시장에 내놓지 않겠다는 건, 주거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표명이다.
다음으로 버넘 총리는 “이용자 본인 부담이 없는” 국민돌봄서비스(NCS)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1948년 공공의료체계인 국민보건서비스(NHS) 창설만큼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인데, 재원 마련을 위하여 국가연금지급액 인상보장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주거권과 돌봄권을 획기적으로 보장하는 개혁안을 밝히면서 그는 “정치적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사회경제적 개혁을 실천하는데 수반되는 정치적 부담을 지고 돌파하겠다는 용감한 선언이었다. <더타임스>는 “앤디 버넘이 크게 간다(goes big)”라고 제목을 뽑았다. 나에게는 이 담대한 기획을 밝히는 연설 자리 뒤 걸린 “다시 희망하라”(Hope Again)는 구호가 강력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장면을 보며 우리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지난 6월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를 축으로 한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투자 규모는 4,700조 원대에 이른다. 첨단산업 거점을 지역에 세워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거대한 비전으로, 나는 이 방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반도체가 역대급 호황을 이끌고 있지만, 청년 일자리, 자영업자와 직장인 소득, 내수 활성화는 뒷걸음질 치는 상황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수출 통계의 숫자와 민생 장바구니의 숫자 간의 괴리가 역대급이다. 위쪽 막대는 솟고, 아래쪽 막대는 가라앉는 이른바 ‘H자형 불평등’이다.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스웨덴의 군나르 뮈르달은 이런 현상을 ‘누적적 인과’ 개념으로 경고한 바 있다. 시장에 맡겨 두면 성장 거점은 사람과 자본을 빨아들이며 더 커지고, 주변부는 그만큼 더 뒤처진다. 성장의 과실이 저절로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경험하지 않았는가.
나는 2022년 『가불 선진국』에서 한국이 청년의 미래, 가계의 빚, 지역의 소멸을 앞당겨 써서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썼다. 반도체 성장만으로 다음 단계를 열려 한다면, 우리는 또 미래를 ‘가불’하는 부메랑을 맞게 된다. 돌봄은 가족의 희생에, 주거는 개인의 빚에, 일자리는 수도권 대기업에 맡긴 채 성장률만 끌어올리는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다.
반도체 투자를 멈추자는 말이 아니다. 국가가 반도체에 쏟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의지와 속도, 그에 걸맞은 ‘메가’ 규모로 국민의 삶에도 투자하자는 것이다. 내가 ‘민생·복지 메가 프로젝트’를 계속 제안하고 강조하는 이유다.
‘성장의 축‘만 존재하고 ’삶의 축‘이 부재한 나라에서는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 ‘가불 선진국’에서 ‘사회권 선진국’으로 가려면,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 옆에 ‘민생·복지 메가 프로젝트’를 나란히 세워야 한다. 국정의 무게 중심축에 불평등 해소가 확고히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국회 최대 개혁 의석과 역대급 세수 실적(작년보다 104.7조 원 증가)이라는 금쪽같은 조건을 헛되이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 2028년 4월 총선 분위기가 형성되기 전까지 약 1년 안에 ‘큰 승부’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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