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항쟁 80주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76주기 추념식에 참석했다. 오랜 기간 정당한 이름을 얻지 못하고 대구폭동, 대구사건 등으로 불리웠던 1946년 10 월1일 대구 민중의 항쟁이 이제 비로소 10월항쟁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미군정의 억압적인 정책에 맞서 노동자들의 9월 총파업과 시민들의 쌀값 폭등에 대한 시위가 어우러지며 폭발한 이 항쟁은 지리적으로는 경상북도를 필두로 전국적인 투쟁으로, 시간적으로는 해방공간에서는 물론 이후 우리 역사에서 끝없이 이어진 민중항쟁의 저수지였다.
과거의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그저 시간 속에 걸린 박제된 사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기억을 끊임없이 또 다른 모습으로 살리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기억은 역사가 된다. 오늘 10월항쟁이 그렇게 박제된 과거의 사실을 넘어 역사로 남았음을 확인한다.
** 오늘 함께 추념식에 참여하고 또 간담회를 통해 진보정치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 주신 정의당 대구시당 김성년 위원장과 운영위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이래는 이날 저의 추도사(서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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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항쟁 80주년을 맞아 국가폭력으로 희생되신 모든 분들의 영전에 깊이 머리 숙입니다. 긴 세월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싸워 오신 유가족과 10월 항쟁 시민연대에도 깊은 존경과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80년 전 오늘을 떠올리며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김용태. 대구역에서 일하던 철도노동자였습니다. 1946년 10월 1일, 노동자와 시민을 향한 경찰의 발포로 김용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음 날 학생들은 희생자의 시신을 들것에 메고 거리로 나섰고, 노동자와 학생, 시민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한 노동자의 죽음은 그렇게 수많은 사람의 분노와 저항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10월 항쟁을 죽음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거리에는 살아가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일터의 권리를 요구했고, 굶주린 시민들은 “쌀을 달라”고 외쳤습니다. 해방은 되었지만 삶은 아직 해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로 여기에 10월항쟁이 오늘 우리에게 남긴 중요한 질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투표할 권리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요구할 권리, 노동자가 인간답게 일할 권리, 누구도 국가의 폭력 앞에서 함부로 목숨을 빼앗기지 않을 권리까지 민주주의입니다. 80년 전 대구에서 “쌀을 달라”는 외침은 가장 절박한 생존의 요구인 동시에 가장 근본적인 민주주의의 요구였습니다. 삶의 권리와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하나였습니다.
80년이 흘렀지만 진실규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되찾지 못한 희생자가 있고 국가의 책임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유족이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의 민주주의가 그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 앞에 제대로 서는 일입니다.
정의당은 그 길에 함께 하겠습니다. 김용태라는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해 아직 불리지 못한 수많은 이름까지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80년 전 거리에서 사람들이 요구했던 삶의 권리가 오늘의 현실이 되도록 싸우겠습니다.
사람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존재하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10월 항쟁을 기억하며 만들어야 할 내일이라고 믿습니다.
2026년 10월 1일
정의당 대표 양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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