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배송이 삶의 기반이 되는 사회란?
누군가는 “저녁 늦게 귀가하는 맞벌이 부모에게 새벽배송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일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며 “가정의 행복과 건강, 육아와 교육을 지켜주는 삶의 기반의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새벽배송이 가정의 행복과 건강, 육아와 교육을 지켜주는 삶의 기반이라는 말이 가시처럼 걸렸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리의 노동이 얼마나 길고 고달프면 밥상을 마련하기 위한 장보기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무거워졌습니다(아님 어느새 현관문 앞 배달의 편리한 소비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결과일까요).
한쪽에서는 ‘일과 여가의 균형’을 이유로 주4.5일제 도입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는 시점에 가족의 건강한 밥상 준비를 위한 장보기조차 새벽배송에 의존해야 할 만큼 노동의 시간에 쫓기는 삶...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요?
과학기술, 디지털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 우리는 왜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에 더 쫓기고 있는 것일까요?
19~20세기 산업혁명기에 증기기관과 방적기계의 발명은 인간의 노동을 줄여주고 노동시간을 줄여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습니다. 기계가 발명되자 자본가들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기계의 활용을 최대화하고자 24시간 가동체제를 만들고 아동노동, 1일 16~18시간의 혹사노동을 강제했습니다. 이로 인해 영국에서는 40대에 사망하는 조로(早老) 현상이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1833년 영국에서 18세 이하 아동의 하루 노동시간을 12시간으로 제한한 것이 바로 공장법, 근로기준법의 효시입니다. 노동의 역사는 (임금 저하 없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제1회 총회에서 1일 8시간, 주48시간 노동제를 국제적인 노동기준으로 확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어떠합니까?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도 온전한 법 적용을 거부당하고 있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등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개인사업자로 위장시켜 아예 근로기준법 밖으로 밀려난 노동자들, 그로 인해 주 52 노동시간 상한제조차 적용을 받지 않는 노동자들이 1천만명을 넘고 있습니다.
자본은 노동시간 제한을 받지 않는 노동자군을 먹잇감으로 삼아 아주 싼 임금으로 무한 노동의 체계를 다시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무한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는 노동자들은 결국 또 다른 무한 노동을 연료로 하는 로켓배송과 새벽배송 노동자들의 노동에 자신의 일상을 ‘지탱’해야 하는 구조가 점점 더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1일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오후 이른 퇴근을 보편화해 가는 사회가 아니라, 쿠팡의 새벽배송에 일상을 맡기고 더 늦은 노동,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도록 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면 우리는 길을 잘못 선택한 것이겠지요.
쿠팡은 장시간 불안정 무권리 노동이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의 허점을 파고들어 잠 못 드는 새벽배송을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장시간 노동 구조는 대한민국 다수 소비자들의 생활(시간)을 쿠팡이 만든 로켓배송과 새벽배송 패턴(시간)에 길들여지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벌이에 눈이 어두운 자본을 제외하면) 서로의 장시간 야간노동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바라는 분은 아마 한 분도 없을 겁니다. 서로의 장시간 야간노동에 지탱하는 삶이 지속되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편으로는 사회 전체적으로 1일 노동시간을 실질적으로 단축하여 나의 삶을 타인의 심야노동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돈벌이 수단으로 생명과 건강을 갈아 넣도록 만드는 장시간 심야노동을 규제하는 노력이 동시적으로 검토되었으면 합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야간노동은 없습니다. 야간노동은 그 자체로 건강을 해치는 발암물질입니다. 생명과 안전을 위한 필수노동을 제외하고는 야간노동을 줄이기 위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심야노동이 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공론이, 그리고 제도적 방안 모색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희망합니다.
2025. 11. 15.
권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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