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 로그인 RSS XML 2026.09.12 20:21(토)
  •  
     
  • 박진웅 국민의힘 서울 강북구을 당협위원장, - 시험지 도둑, ‘미래에서 보고 온 시험지’ 그리고 오애순의 반장선거
  • 의정일보suyu1456@naver.com일자: 2025-07-30 02:12

  •  

    [ 시험지 도둑, ‘미래에서 보고 온 시험지’ 그리고 오애순의 반장선거 ]


    1.


    어느 고등학교에서 상습적으로 중간ㆍ기말고사 시험지를 빼돌린 사건이 발생했다.
    교사와 교직원이 현장을 맡았고 수천만원의 금전적 대가는 당연히 부모의 팀워크였다.
    ‘미래에서 보고 온 시험지’ 없이 치른 시험에서는 수학 40점이라니
    결국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학생의 치트키는 ‘간 큰 범죄’를 통해 손에 쥔 시험지였다.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학교 운영위원이라고 하니 ‘스카이 캐슬’도 퍼뜩 스쳐간다.
    아마도 대부분이 2018년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을 떠올렸을 것이다.
    당시 시험지를 빼돌린 사람은 다름 아닌 해당 학교 교사이자 쌍둥이의 학부모였다.


    ‘부모의 눈먼 자식사랑’만이 원인은 아니었던 사건도 기억난다.
    2014년에는 연세대 로스쿨 학생이 ‘무려’ 교수님의 컴퓨터를 해킹했었고
    1992년 대입학력고사(現 수능 격) 때는 시험 하루 전 문제지가 도난 되어
    문제를 재출제하고 시험 일자마저 미뤄지는 희대의 전 국민 혼비백산 사건은 전설이 되었다.


    2.


    ‘해내야만 한다’ 마음먹었을 때, 시험이 주는 압박감은 상상 그 이상일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내 ‘수학의 정석’은 꽤 너덜너덜했다.
    많이 읽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로 하도 많이 집어 던져서 그랬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나에게 최고의 악몽은 몽달귀신 따위가 아니라
    ‘시험 준비 못했는데, 오늘이 수학시험 보는 날이야?’ 이었다.


    대학교 시절에는 얼추 ‘아홉 달 방황하고 석 달 국가고시 공부’하는 패턴이 반복되면서
    초가을의 찬바람은 ‘실패의 공포를 경고하는 찌릿찌릿한 통풍’이었다.
    ‘합격시켜줄 사람만 있다면 얼마나 쥐어줘야 할까’라는 발칙한 상상도 ‘당연히’ 해봤다.
    물론 쥐꼬리 봉급 공무원 아버지의 잔고로는 애당초 어림도 없었지만.


    3.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지만, 수십 년 째 우리 교육의 현주소는 ‘언제나 위기’라고 한다.
    초중고 12년의 교육과정은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한 ‘철인 3종’ 경기의 트랙이다.


    입시지상주의에 짓눌려 혹자는 범죄자를 불사하고, 또 다른 다수는 억울한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반복된다.
    “시험지를 빼돌렸다고? 부모 찬스를 썼다고?
    밤새워 열심히 공부한 나(내 새끼)는 뭐가 되냐?”


    사건들의 공통분모는 ‘우수한 성적’과 ‘폼 나는 대학’이다.
    시험점수 앞에 윤리ㆍ공동체ㆍ신뢰ㆍ성실ㆍ인격 따위의 가치는 맥을 못 춘다.


    “교육이란 미성년 학생들이 건강하고 올곧은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하지만 극심한 취업난과 여전히 견고한 학벌주의 앞에서 이는 공허한 이상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유효하다 … 정직한 이가 손해 보지 않고 실패한 이에게도 다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교육의 모습이지만 왠지 닿을 듯 닿지 않는 먼 미래인 듯 아득할 뿐이다.” (기호일보, 250728)


    4.


    수없이 겪은 입시제도의 변화, 난수표 같은 입시전형 유형 앞에서
    과연 어떠한 제도가 학업성취의 수월성과 향상성, 개개인의 다양성을 담아내는 최적인 지,
    그리고 ‘무너지고 잠자는 교실’을 살리는 묘책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사유의 부족을 고백, 애당초 오늘 글은 결론을 짓지 못할 각오로 시작했다.)


    다만, 일각에서 해법이라 제시하는 ‘경쟁 없는 교실’, ‘경쟁교육은 야만적’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교육에 어찌 ‘경쟁의 요소’가 없을 수 있겠는가.
    경쟁이 야만적이라면 올림픽 게임부터 폐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경쟁의 룰이 얼마나 공정한가, 경쟁의 부작용을 얼마나 최소화할 수 있는가 여부이다.
    ‘사회는 학생들에게 단기적 성과보다는 지속가능한 학습과 성장을 강조해야 한다.’
    혹은 ‘정직과 노력으로 성취를 이루는 교육 환경을 추구해야 한다’는 원론적 얘기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며 (화가 나서) 일단 이렇게 떠들고 싶다.
    “학생들의 노력이 순수한 경쟁 이외의 요인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공정ㆍ공평하지 못한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폭삭 속았수다’ 오애순의 국민학교 반장선거가 생각나서.


    [의정일보=의정일보] suyu1456@naver.com

    • SNS다른 사람과 공유해 보세요
    • X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 URL로 공유시 클릭후 복사(Ctrl+C)하세요.
  • 전송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