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도라산 오는 열차를 탔습니다. 열차 안에 있던 휴전선 사진, 철조망 사진을 보면서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철조망’과 철책은 단절이고 우리에게 답답함을 선사하지만 ‘철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우리에게 희망을 이어주는 길입니다. 철도와 철길을 따라서 철책선을 걷어내고 철망을 걷는 날을 우리는 간절히 소원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이곳 도라산은 기차역을 넘어 분단 끝에서 남북을 연결하고 민통선 안에서 평화를 준비하는 희망의 정거장입니다. 남쪽에는 역 가운데 국제선 승강장이 있는 역은 도라산역이 유일합니다. 여기서 출발해서 개성, 평양, 신의주 거쳐 마침내 파리, 런던까지 갈 수 있는 날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직후에 개최된 제1차 남북장관급 회담을 통해 합의하고 그리고 경의선 복원 사업으로 태어났습니다. 2002년 2월에는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께서 함께 이 자리를 방문해 바로 밖에 있는 철도 침목에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을 기원하는 서명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세현 장관께서 기억이 생생하실 것 같습니다.
그해 봄에 서울역과 도라산역을 오가는 기차가 생겼습니다. 잠깐이었지만 개성공간이 바빴던 시절에 사람뿐만 아니라 원자재, 물자까지 철로를 통해서 실어날랐습니다. DMZ 평화관광의 희망도 꿈도 피어올랐습니다.
하지만 오늘 폐허가 되어버린 남북관계 위에서 도라산역은 침묵 그리고 기다림의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서울역에서 이곳까지 평화를 실어 나르던 열차도 2019년 가을 이후에 멈췄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그 오랜 침묵을 깨 보고자 합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앞당겨보고자 합니다.
지금 우리는 세계 각지의 전쟁으로 불안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는 우리에게 선택이 아니라 생명선입니다. 평화는 환경이 아니라 밥이고 생명이고 삶 자체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한반도 평화 공존 의지를 천명해 왔습니다.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실천해 왔습니다.
DMZ 평화이용열차의 재개는 국민들이 일상 속에서도 평화를 찾을 수 있는 평화의 일상화를 향한 작은 출발점입니다.
나들이 나온 여행객들이 도라산역에서 평화의 현장을 걷고 보고 느낄 때, 평화는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숨 쉴 일상의 언어가 될 것입니다.
몇 년간 전단과 오물풍선이 난무하고 확성기와 소음방송의 악순환으로 얼룩졌던 접경지역은 이제 평화공존과 발전의 공간으로 변모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적대와 대결이 아닌 평화와 공존, 화해와 협력만이 남과 북이 함께 잘 사는 길입니다.
우리가 먼저 북측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평화를 실천해 나갈 것입니다.
철조망을 다시 세우는 ‘적대적 두 국가’가 아니라,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다시 잇고 남북이 함께 다시 개성공단의 불을 밝히는 ‘평화적 두 국가’ 상태가 남북 모두에게 이익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기 개성공단에서 따로 살면서도 함께 잘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공동 이익을 창출하는 ‘평화적 두 국가’ 상태를 이미 경험했습니다. 변화된 국제정세 그리고 남과 북의 국익에 맞게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새로운 관계를 충분히 정립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출발한 서울역에서 이곳 도라산역까지 56km입니다. 여기서 북쪽 판문역까지는 7km입니다. 걸어서도 1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입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개성공단이 있습니다.
저는 이틀 전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대한불교조계종이 개최한 금강산 관광 재개 기원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손에 닿을 듯한 해금강, 금강산을 눈앞에 두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우리는 왜 여기서 멈춰 서 있어야 하는 것인가.
지금 끊어진 철로 앞에 멈춰 서 있는 것은 비단 기차만이 아닙니다.
평화가 멈춰 서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멈춰 서 있습니다.
청년들의 일자리가 멈춰 서 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가 멈춰 서 있습니다.
평화는 멈춰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진전해야 합니다.
오늘 도라산역에서 멈춘 기차가, 다시 금단의 선을 거침없이 통과해서 개성과 평양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으로 가는 길이 열리기를 소원합니다.
철도가 다시 남과 북을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이웃으로 이어주기를 기대합니다.
수세기에 걸친 전쟁을 끝내고 공존의 길을 찾은 유럽연합의 국가들처럼, 아침에 아내와 국경을 넘어 더 좋은 식재료를 사고, 점심에 친구와 국경을 넘어 더 싼 휘발유를 넣고, 저녁에 가족과 국경을 넘어서 더 멋진 레스토랑을 찾는 평화와 공존의 한반도, 공동성장의 한반도를 꿈꿔봅니다.
EU 사람들이 했는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만 해협의 불안과 긴장 속에서도 통우, 통상, 통항 ‘3통 정책’을 기반으로 매주 수백 차례 항공기가 오고 가는 대만과 중국 본토처럼, 사람과 돈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남북을 꿈꿉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오늘 많은 분들이 귀한 걸음, 마음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누구보다 한반도의 평화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부장관으로서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차 운행 재개를 위해서 팔을 걷고 힘을 보태주신 국방부, 국토교통부, 경기도, 파주시, 한국철도공사, 코레일관광개발, 육군 제1보병사단 등 관계기관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도라산역은 단절의 끝이 아닌 연결의 시작점입니다.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닌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 되는 그날까지, 마음을 모아주십시오.


[의정일보=의정일보] ken626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