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의 스승 백산 안희제와 페치카 최재형 선생의 발자취를 흠모하며 만주와 연해주로
독립운동가 중 업적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많다.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독립운동가는 1% 미만이다. 오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걸출한 독립운동가 두 분의 루트를 찾아 만주와 연해주를 향한다. 특히 교육사업을 통해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만주의 백산 안희제와 연해주의 최재형 선생의 업적을 알리려고 한다.
백산 안희제는 영남의 거부로 전 재산을 처분하여 흑룡강성 목단강에 대규모 발해농장을 개간하였다. 임시정부 자금의 60%를 비밀리에 제공해 오다 일경에 체포되어 고문으로 1943년 순국하였다. 해방 후 서울로 돌아온 백범 김구가 백산의 고향을 향해 존경하는 마음으로 큰절을 했다. 분단 체제를 반대한 백범이 김일성을 만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수행비서로 동행한 이가 백산의 4남이었다. 특히 백산은 발해농장의 한인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의식을 가르쳤는데 독립운동가 이전에 교육자로서 백산의 역할을 존경한다.
연해주의 거부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을 비롯한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역할을 했다. 특히 어려움에 처한 한인들을 돕고 따뜻하게 품어준 모습 때문에 연해주 한인들은 선생을 러시아어로 난로를 뜻하는 페치카로 불렀다. 연해주에서 사업을 해서 거부가 되었고, 무장투쟁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고 많은 민족학교를 설립했다. 나는 2019년 소강석 목사님을 도와 총살 직전 가족과 함께 살았던 페치카의 집 마당에 흉상을 설립했다. 총영사관과 함께 최재형 민족학교를 설립하기로 의기투합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추진되지 못했다. 경기도교육청이 지원하는 최재형 민족학교를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설립한다면 최재형 선생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백산과 페치카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표상이다. 이시영 선생 일가에 비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일제에 의해 목숨을 잃은 후 폐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경의대를 졸업한 백산의 장남이 해방 후 고향에서 농민조합을 주도하여 이승만으로부터 좌익으로 몰리면서 백산의 후예들은 목숨을 부지하기도 버거운 처지가 되었다.
또 어릴 적 러시아 양부모를 만나 러시아로 귀화한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은 러시아 국적으로 러시아 공산체제에서 살았고, 페치카의 제자들은 모두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으니 페치카의 존재는 백 년 가까이 묻혔다.
폐족이 되어버린 걸출한 민족의 영웅 두 분을 청족으로 부활시켜야 한다. 경기교육공동체는 오늘 그들의 독립 루트를 따라 만주와 연해주로 향한다.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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