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준하 선생 50주기를 맞아>
독립운동가, 민주운동가, 정치인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그 사명을 다해온 장준하 선생.
격랑의 현대사 중심에서 뜨겁게 살다 가셨습니다. 오늘(17일)은 장준하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50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장준하 선생을 말할 때 ‘구국장정 6천 리 길’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1944년 학도병 장준하는 동료들과 함께 일본군 부대를 탈출해 무려 2천 킬로미터가 훌쩍 넘는 6천 리 길을 달려, 1945년 초 충칭에 있는 임시정부에 도착합니다. 70여 일간 중국의 추운 벌판을 걸었던 그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은 탈출한 학도병들을 열렬히 환영했고, 장준하 선생은 이런 답사를 했습니다.
“임시정부에 높이 휘날리는 태극기를 바라보고, 그 태극기에 아무리 경례를 하여도 손이 내려지지 않고 영원히 계속하고 싶었습니다”
광복군에 배속된 장준하 선생은 독립투쟁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고, 광복 후 김구 주석과 함께 우리나라로 돌아왔습니다.
선생은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며 잡지 <사상계>를 창간했습니다. 피난지에서 잡지를 공론의 장으로 만든 노력은 지금도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선생은 이승만 정권과 유신체제를 비판하면서 많은 고초를 겪었고, 1970년 김지하 시인의 작품 <오적>을 실었다가 강제 폐간의 수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긴급조치 제1호 위반을 비롯해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여러 차례 투옥되었던 장준하 선생은 1975년 오늘, 등산을 하다가 죽음을 맞았습니다. 선생의 죽음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다룰 만큼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습니다.
광복 80년을 맞아 장준하 선생이 자신의 구국대장정을 직접 기록한 <돌베개>라는 책이, 새롭게 편집되어 재출간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영원한 광복군이자 비판적 지식인으로 살았던 선생의 항일수기가 후대에게도 좋은 배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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