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일보
  •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차향과 문향이 어울리는 깊은 밤... 좋은 정치를 생각합니다

    의정일보suyu1456@naver.com일자: 2026-08-28 19:42

     

    < 차향과 문향이 어울리는 깊은 밤, 좋은 정치를 생각합니다. >


    밤이 깊었습니다. 작고 소박한 차실 겸 서재에 앉습니다.


    오늘은 유독 긴 하루였습니다. 이른 아침 무안청사로 출근해 바삐 움직였습니다. 늦은 오후에는 국방부 ‘광주군공항 이전 부지선정위원회’에 참석해 ‘무안군 망운면 일대’를 이전 후보지로 결정했습니다. 광주시 공식 건의 12년 만입니다. 지역의 묵은 숙제 하나가 큰 고비를 넘었습니다.


    물론 끝은 아닙니다. 주민투표와 최종 부지 선정까지 남은 과정이 있습니다. 무안의 희생이 특별한 지원과 발전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할 책임도 큽니다.


    내일 저녁에는 또 하나 무거운 자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옛 전남의 큰 숙제인 국립의대 신설을 놓고, 동부와 서부가 함께 살 길을 찾기 위한 ‘국립의대 신설과 지역상생을 위한 정치협상회의’를 갖습니다.


    한 대학을 선택해야 하지만 한 지역을 버리는 선택이어서는 안 됩니다. 경쟁에는 결론이 있어야 하지만, 그 결론이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어서는 더욱 안 됩니다.


    하나의 큰 고비를 넘자 또 하나의 산이 앞에 놓입니다. 쉬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세월이 쌓여 제법 익은 보이차를 우립니다.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립니다. 굳게 눌려 있던 찻잎이 천천히 몸을 풀며 향을 내놓습니다.


    차를 마시며 책을 펼칩니다. 요즘 읽기 시작한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입니다.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오뒷세우스가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기까지 다시 10년. 수없이 길을 잃고 유혹에 흔들리고, 견디고 싸우면서도 끝내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잊지 않았던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정치도 결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잊지 않는 일 아닌가?


    길이 험하다고 목적지를 바꿀 수 없습니다. 갈등이 있다고 사람을 버릴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 이기고 누군가 지는 것으로 끝내서도 안 됩니다.


    군공항 이전도 그랬습니다. 국립의대도 그래야 합니다.


    더 듣고, 더 설득하고, 때로는 기다리면서 결국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빨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입니다. 그리고 함께 도착하는 일입니다.


    책장을 넘기다 차 한 모금 마십니다. 또 반복합니다. 입으로는 차향을, 머리로는 문향을 맛봅니다. 둘의 조화가 절묘합니다.


    오래 묵은 차는 세월이 맛을 만들고, 오래 살아남은 고전은 세월이 의미를 축적합니다. 한쪽은 찻잎이 시간을 견뎠고, 다른 한쪽은 문장이 거의 3천 년의 시간을 견뎠습니다.


    사람도 정치도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견딘 시간만큼 깊어지고, 부딪친 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마침내 함께 가야 할 곳을 찾는 것.


    밤이 더욱 깊어갑니다. 오늘의 ‘결정’을 지나 내일의 ‘협상’으로 향합니다.


    차향도 문향도 깊게 남는 밤입니다. 좋은 정치도 오래도록 그런 향기를 남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의정일보=의정일보] suyu145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