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원장, 김정관 장관과 민주당은 답해야 한다

<김정관 장관과 민주당은 답해야 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반도체, 연구개발(R&D;), 스타트업 분야의 노동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의 ‘996’ 노동제를 본보기로 들었다. ‘996’ 노동제는 주 6일 동안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제도인데, 김 장관은 두산그룹 재직 시 충칭 방문 경험을 들면서, “중국은 밤 12시까지 일한다. 일요일 하루 쉰다”며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 국민의힘 고동진 의원이 모든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에 52시간 특례를 적용하는 특별법을 발의한 바 있는데, 김 장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반인권적이고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에 대해 분명한 사실 몇 가지를 짚고자 한다.
첫째, 현재 우리나라는 이미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운영되고 있다(근로기준법 제52조).
즉, 노사 합의에 따라, 정산기간 평균 주 40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노동자가 업무 시작·종료 시각과 1일 노동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유연근무가 허용되고 있다. 연장노동과 야간노동에 대해서는 당연히 수당이 지급되며, 1개월 초과 정산기간이 설정될 경우 노동일 종료 후 다음 노동일 시작 전까지 11시간의 연속 휴식도 주어져야 한다. 요컨대, 현재도 신상품이나 신기술 개발 일정에 맞춘 집중적 근무가 가능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표적 반도체 기업들은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이 역대급 이익을 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김정관 장관은 이 제도만으로 부족하고 중국의 ‘996’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둘째, 김정관 장관이 칭송한 ‘996’ 노동제는 이제 중국에서도 불법이다.
2021년 중국 최고인민법원과 인력자원사회보장부는 ‘996’ 노동제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중국 노동법은 노동시간을 하루 8시간, 주 평균 44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있으며, 1995년 중국 정부는 국무원 규정을 개정해 표준노동시간을 하루 8시간·주 40시간으로 단축했다. ‘996’ 노동제는 이상과 같은 법규 위반임을 분명히한 것이다.
김 장관은 2021년 중국 사법부과 행정 당국의 결정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중국에서조차 불법적 노동인권 침해로 확인된 악습임을 알고도 도입을 주장하는 것인가? ‘노동인권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할 대한민국이 배워야 할 사례가 이미 무효가 된 중국의 사례가 아님은 분명하다.
셋째, 기술 혁신은 노동시간을 쥐어짠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김정관 장관이 중국 국영기업이 반도체 제조공정의 핵심 설비인 DUV(Deep Ultraviolet, 심자외선) 노광장비 개발 소식에 자극받아 이런 제안을 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중국의 이러한 성과가 장시간 노동으로 가능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중국 과학기술 발전의 진짜 원동력은 다수의 기초과학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만큼 이공계에 쏟아붓는 막대한 지원과 연구자에 대한 압도적인 대우에 있다.
무엇보다 AI 시대에 대한민국 미래 산업을 선도해야 할 산업통상부 장관이 ‘장시간 노동이 곧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직결된다’고 믿는 것은,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에 머물러 있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지금 김정관 장관이 다른 부처와 협업하며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인 탄소중립과 RE100 기준을 맞추지 못해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퇴출당할 수 있는 위험, 그리고 후진적인 노동 환경에 지친 핵심 인재들이 해외로 이탈하는 현실이다. 그러한 낡은 인식으로는 결코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을 설계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주 4.5일제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이재명 정부는 주 4.5일제 도입이 국정과제임을 밝힌 바 있다. 실제 노동부는 올해 하반기 ‘실노동시간 단축 지원법’을 입법 예고한 상태다. 김민석, 정청래 등(번호 순)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당대표 후보와 여러 최고위원 후보들도 모두 ‘주 4.5일제’ 실현을 약속했다. 나 역시 《가불선진국》(2022)에서 주 4.5일 노동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한 바 있다.
‘주 52시간 특례’ 도입 여부는 단지 노동시간 연장의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 R&D;, 스타트업 분야의 장시간 노동이 과연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되는지가 입증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회사의 연장 근무 권유 또는 압박을 불이익 없이 거절할 수 있는지, 현행 ‘선택적 근로시간제’만으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등을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이런 면밀한 논의도 없이 ‘996’ 노동제를 칭송하며 노동시간부터 늘리려는 시도는 매우 안이하며, 노동인권의 퇴행만 초래할 뿐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은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잊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과거 윤석열 정권이 R&D; 노동자에 대한 주 52시간제 특례 도입을 추진했을 때, 이를 강력히 반대하고 무산시킨 것은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었다. 그런데 지금 김정관 장관이 ‘996’ 노동제 도입을 들고나온 것이다.
현재 민주당의 입장은 무엇인가?
책임 있는 집권 여당으로서 김정관 장관의 ‘996’ 노동제 도입 주장이 민주당이 추구하는 ‘중도실용’의 길인지 명확하게 답변해야 한다.
[의정일보=의정일보] suyu1456@naver.com
